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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박정희 대통령 시대’ 만든 63년 대선에는 지역감정 없었다 [김대중 육성 회고록〈5〉]

2023-06-13 4 Dailymotion

 ━<br />  김대중 육성 회고록 〈5〉 <br />  “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.” <br />   <br /> 1963년 8월 30일,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대장은 강원도 철원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열린 전역식에서 이 유명한 말을 남긴 뒤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. <br />   <br /> 당시 김대중(DJ)은 야당 민주당 대변인이었다. 두 해 전 5·16 군사정변이 터지는 바람에 4전 5기 끝에 강원도 인제에서 당선된 첫 국회의원(민의원)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, 군정(軍政)에 의해 정치 활동 금지자로 묶여 있다가 간신히 정계에 복귀한 상태였다. <br />   <br /> 정계의 최대 이슈는 그해 10월 15일로 다가온 제5대 대선의 승패였다. 군복을 벗어 던진 박정희가 민주공화당 후보가 나섰고, 이에 맞설 야권 단일 후보로 민정당의 윤보선 전 대통령이 추대됐다. <br />   <br /> ‘박정희 빨갱이’ 색깔론에 역풍 <br />   <br /> 선거 판세는 치열한 접전 양상이었다. 그런데 윤보선 후보 측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. 전라도 여수 유세에서 윤보선 측 연설자가 48년의 ‘여순반란사건’에 박정희를 엮어 색깔론을 폈다. <br />   <br /> “박정희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민주주의자이고 누가 비민주주의자인가는 역사를 캐 보면 알 것이다.” <br />   <br /> 나, 김대중의 판단은 이랬다.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과 관련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사형 위기에 처했던 일은 역사적 사실이다. 하지만 반공을 국시(國是)로 내건 박정희를 좌익으로 몰자 호남 사람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. 과거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반대 세력을 숙청할 때면 공산당이...<br /><br />기사 원문 : 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5169437?cloc=dailymotion</a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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